죽어도 사는 사람; 불멸의 링컨 유산
저자 : 김동길. 강성학 공저
발행처 : 극동대학교 출판센터
ISBN : 979-11-962665-0-9
출판일 : 2018-01-18
출판사 서평
우리는 링컨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정도이다.
링컨의 정치철학적 사상과 역사적 리더십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지혜로운 예언자적 비전을 가진 민주주의의 지도자였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현재 한국이 직면한 진퇴유곡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전을 찾기를 기대한다.
목차
저자 서문 링컨과 한국인__ 강성학
제1장 프롤로그: 나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__ 김동길
제2장 링컨 대통령과 유교정신__ 김동길
제3장 링컨: 윤리적 대통령__ 김동길
제4장 미국 남북전쟁의 역사적 의미__ 강성학
제5장 미국의 링컨 계승자들__ 강성학
제6장 링컨의 글로벌 유산__ 강성학
제7장 에필로그: 링컨의 유산이 한국인들에게 주는 교훈__ 강성학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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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김동명
1928년 평안남도 맹산 출생으로 연희대학교 영문학과, 미국 에반스빌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이 후 연세대학교 교수, 교무처장,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현재 월간 경제풍월에 컬럼을 연재하여 이를 묶어 책으로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저서로는 『길은 우리앞에 있다』, 『어떤 사람이기에,』 끝이 없는 이 길을』, 『대통령의 웃음』, 『가노라 삼각산아』, 『불어 봄바람』, 『영원히 남는 것』, 『Abraham Lincoln』, 『링컨의 일생』, 『하늘을 우러러』, 『석양에 홀로서서』, 『길을 묻는 그대에게』, 『그래도 길은 있다』, 『한국청년에게 고함』, 『하느님 나의 하느님』, 『새야새야파랑새야』, 『겨울이 오기 전에』, 『죽어서 흙이 될지라도』, 『내가 부르다 죽을 노래여』, 『사랑의 길 자유의 길』 외 다수가 있다.

강성학 (姜聲鶴)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에서 2년간 강사를 하다가 미국무부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생으로 도미하여 노던 일리노이 대학교(North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1981년 3월부터 모교의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해 오면서 고대 영자신문사 주간, 정치외교학과 대학원 주임, 학과장 및 정경대학 교학부장, 정책과학대학원 국제관계학과 과장, 교학부장, 재단법인 고려대학교 BK21 사업지원 재단 상무이사, 평화연구소장 그리고 교무처장과 정책대학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1986년 영국 외무부(The British Foreign and Commonwealth Office)의 펠로우십(Fellowship)을 받아 런던의 경제정치대학(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의 객원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1988년에는 일본 외무성의 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 펠로우십을 받아 도쿄대학의 동양문화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 그리고 1998년 말과 2006년 봄 학기에는 일본 와세다 대학의 교환교수였다. 또한 그는 제9대 한국 풀브라이트 동문회 회장 및 한국의 영국정부장학수혜자 모임인 한국 셰브닝 동창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그 동안 한국국제정치학회 상임이사 및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세계지역연구학회 이사, 한국유엔 체제학회(KACUNS)의 설립 사무총장과 제2대 회장을 역임했고 이것의 모태인 미국의 유엔체제학회(ACUNS)의 이사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최근 영국에서 'Korea's Foreign Policy Dilemmas: Defining State Security and the Goal of National Unification'를 출간하였다. 그 동안 '카멜레온과 시지프스: 변천하는 국제질서와 한국의 안보'(688쪽)라는 저서로 1995년 제1회 한국국제정치학회 저술상을 수상했으며, '이아고와 카산드라: 항공력 시대의 미국과 한국'(807쪽)은 미국의 저명한 학술지 'Foreign Policy'가 서평을 싣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1999년 문화관광부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되었으며 그의 최대 야심작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러일전쟁의 외교와 군사전략'(781쪽) 및 '소크라테스와 시이저: 정의, 평화 그리고 권력'(304쪽), 또 한 때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던 '새우와 고래 싸움: 한민족과 국제정치'(402쪽)가 있다. 또한 2007년 대한 민국 학술원의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된 '인간 神과 평화의 바벨탑: 국제정치의 원칙과 평화를 위한 세계헌정질서의 모색'(756쪽) 그리고 '무지개와 부엉이: 국제정치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논문 선집'(994쪽)를 비롯하여 지난 30여 년간의 교수생활 동안에 약 30권에 달하는 저서, 편저서, 역서를 냈다. 그는 한국 국제정치학자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연구주제인 "전쟁", "평화", "한국외교통일" 문제들에 관한 각기 집중적 연구결과로 볼 수 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인간 神과 평화의 바벨탑' 그리고 '카멜레온과 시지프스'라는 3권의 저서를 자신의 대표적 "학술저술 3부작"으로 꼽고 있다.

책속으로
2006년 10월 핵실험 성공 이후 북한은 넓게는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지만, 더욱 직접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한국은 지난 20년 동안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에 취한 채 잠자고 있었다. 아니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경우 과거 두 명의 대통령이 추진한 대북 평화와 유화정책은 부분적이나마 북한의 핵개발을 앞당기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다.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한국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마주하고 말았다. 만일 남한만의 비핵화 상태가 지속되고, 더구나 탈원전으로 핵무장의 가능성마저 완전히 배제하는 가운데, 북한의 핵무장이 어떤 형태로든 국제적으로 용인 혹은 묵인되고, 더 나아가 남한이 경제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경제발전을 돕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그것은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머지않아 남한을 흡수 통일하게 하려는 불순한 목적을 위한 기만적 전략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과거 한국전쟁의 최초 여성 종군기자였던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는 한국에 묻힌 유엔 참전용사들에게 헌정한 〈한국전쟁〉(War in Korea, 1951)에서, 민주주의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한 바 있다.

“불행하게도 자유국가들은 독재국가로부터의 위험을 무시하는 만성적인 기질이 있다. 히틀러는 그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말했었다. 북한은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말했고, 중국 또한 그랬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을 믿지 않았었다.”

이것은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도 여전히 적절한, 아니 어쩌면 너무도 늦어버린 경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속성을 고려할 때, 지금이라도 모든 한국인들이 대오각성하고 일치단결하여 각자가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 모두가 함께 최후의 총력전을 준비해 나간다면 희망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깜박이는 희망을 빛나는 승리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예언자적 비전과 함께 최후의 승리를 가져다 줄 영웅적 지도자가 출현해야 한다. 본서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의 지도자였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다룬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오늘날 이 땅이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그가 남긴 불멸의 유산이다. 한국인들 가운데 링컨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즉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라는 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대부분 한국인들의 링컨 대통령에 대한 지식은 그가 19세기 미국 남북전쟁에서 승리하여 노예를 해방시킨 후 불행히도 암살당한 비운의 대통령이었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나 생각된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링컨에 관해 구체적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 위인전을 통해 링컨을 알게 된 사람도 링컨에 대한 지식은 매우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에이브러햄 링컨은 한국인들에겐 낯선 역사적 인물이다.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한국에 근대 교육이 본격 도입되었고, 또 일제 강점하 민족주의의 성장기에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나 지식인들에겐 링컨보다는 “민족자결의 원칙”을 선언한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나, “반제국주의 투쟁”을 선전한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이름이 더 빈번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인들을 포함하여 식민지 처지의 민족들에겐 윌슨의 민족자결의 원칙이 희망의 빛으로 다가왔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내건 전쟁의 목적은 “민주주의가 안전한 세계”를 수립하는 것(to make the world safe for democracy)이었다. 링컨은 남북간 내전을 “지구상에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투쟁으로 보았다. 이러한 링컨의 궁극적인 비전은 자신의 정당이 아니라, 20세기 최초의 민주당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세계로 나가는 교량”(a bridge to the world)에서 발견된다. 윌슨은 링컨을 가장 위대한 본보기로 간주했다. 윌슨은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민주주의가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링컨의 사상과 경험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고 모색했다.
그러나 전후 민주주의는 안전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비롯된 계급투쟁의 위협에 처한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각각 무솔리니(Mussolini)의 파시즘과 히틀러(Hitler)의 나치즘이 “야만적 볼셰비즘”(barbaric Bolshevism)과 “타락한 민주주의”(decadent Democracy)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호소하더니, 정권을 잡자마자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로 전락해버렸다. 반면 반제국주의의 깃발을 앞세운 수많은 민족주의 세력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자 바로 그 연합국이 창설한 유엔의 탈식민화(de-colonialism) 운동에 힘입어 신생 국가들을 수립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의 영향 하에 들어간 민주주의 세력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소련식 공산당의 일당지배하에 “인민민주주의”라는 간판을 걸고 실제로는 좌익 전체주의 체제의 길을 택했다. 한 민족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의 후원 하에 두 개의 판이하게 다른 이념적 정치체제가 각각 수립된 한반도의 경우가 전형적인 역사적 실례라고 하겠다.
소위 인민민주주의를 내세운 소련식 전체주의 체제의 북한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적 인물 가운데 하나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름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한편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대한민국의 창설자들은 미국의 윌슨 대통령을 칭송했었다. 그러나 남한 내 “민주주의” 담론의 과잉 현상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입에서조차 링컨의 이름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교육을 통해 링컨에 대해 다소라도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과 함께, 어쩌면 수많은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민주주의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여기서 그것들이 어떤 민주주의였는가를 가리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지적하려는 것은 한국인들이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또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한반도의 통일된 조국을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윌슨 대통령이 자신의 가장 위대한 정치적 스승이라고 인정했던 에이브러햄 링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링컨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와 그에 입각한 통일국가 수립의 대표적 상징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오늘의 시점에서 대한민국은 밖으로는 가공할 핵무기를 손에 쥔 북한 김정은 독재정권의 위협에 국가적 생존이 백척간두에 선 것처럼, 풍전등화의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있고, 안으로는 국민들에게 온갖 복지정책으로 고통없는 삶을 약속하며 무조건적 지지를 요구하는 정치인들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 놓여 있다. 한국인들은 억압 때문이 아니라 몽테스키외(Montesquieu)가 일찍이 경고했듯이 스스로 진정한 자유인의 독립적 자유의지를 포기하고 국가에 의해 자신의 삶 전체가 관리당하는 “부드러운 전제정치”(Soft Despotism)에 빠져들고 있는 안타까운 처지에 있다. 그것이 아무리 부드럽다 해도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세계는 곧 전체주의의 세계이다. 한국인들이 정말 애완동물이나 동물원 속의 동물 같은 삶을 알면서도 원하는 것일까? 국가통치관료들에 의해 조정되는 안락한 삶이 진실로 지속적으로 가능하긴 한 것일까? 과거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인민들은 그런 삶의 경험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를 깨달았다. 지난 20세기 말 동유럽의 민주화 혁명과 소련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가 시작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과연 한국인들에게 이런 내우외환의 진퇴유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전과 그것을 실현해줄 지도자는 없는 것인가? 바보는 직접 경험으로만 배우는 법이다. 보다 현명해지기 위해서, 바보처럼 구태여 과거 동유럽인들과 러시아인들이 고통 속에 경험했던 그 기나긴 길을 한국인들 역시 꼭 거쳐야만 하는 것일까? 히틀러에 직면하여 1930년대의 프랑스인들과 영국인들이 범했던 실수를 꼭 직접 실천해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 될 것이다. 저자는, 적어도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현재 한국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진퇴유곡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비전을 링컨의 정치철학적 사상에서, 그리고 그런 지도자의 모델을 링컨의 역사적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관련, 저자는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을 2017년 1월에 이미 출간한 바 있다.
그 이후 저자는 링컨사상연구소에서 김동길 박사님의 요청으로 계속해서 “미국 남북전쟁의 역사적 의미”와 “죽어도 사는 사람: 링컨”이라는 주제로 거듭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미국의 남북전쟁이 미친 범세계적 영향을 분석하고, 링컨 사후 그의 비전이 미국의 수많은 후임 대통령들에게는 물론이고 미국 땅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루었다. 즉 링컨의 위대한 유산을 관련문헌을 통해 구체적으로 조사해본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본 연구가 출판될 수 있다면 링컨의 위대성이 범세계적으로 어느 정도인지를 한국인들도 알게 될 것이며, 그에 따라 한국인들도 링컨을 새롭게 재인식할지 모른다는 일종의 기대심리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본서의 공동 저자인 강성학은 김동길 박사님을 찾아뵙고, 약 반세기 전에 쓰신 김박사님의 박사학위 논문 중 일부를 번역하여 포함하는 형태로 공동 저서의 출판을 제안드렸다. 이에 대해 김동길 박사님께서 흔쾌히 동의하시고 출판과 관련된 모든 작업을 나에게 위임하셨다. 아울러 한국의 유일한 링컨 학자로서 오랜 세월 동안 마음에 품어오신 링컨에 관한 김동길 박사님의 생각을 제1장에 담기로 하고, 박사님께 “나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라는 주제의 글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제2장과 제3장은 김동길 박사님의 박사학위 영어논문 중 핵심적 일부(제2장, 제7장 중 pp. 177-195)를 번역하여 게재하기로 했다. 번역은 마침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윤성원 박사가 맡아 수고해 주었다. 윤박사는 번역을 마친 뒤에도 여러 차례 번역문을 다듬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쓴 모든 원고까지 교정해 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윤박사의 수고에 깊이 감사한다. 또한 마지막 교정작업을 위해 크게 수고해준 공군사관학교 조교수 박성건 중위에게도 깊이 감사한다.
출판사를 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이런저런 생각 중에 내가 석좌교수로 강의하고 있는 극동대학교의 출판부가 생각났다. 류기일 극동대학교 전 총장님에게 신간에 관해 설명하자, 류 전 총장님은 극동대학교의 출판센터가 발행하도록 주선해 보기로 했다. 그 뒤 본서가 극동대학교 출판센터가 발행하는 최초의 학술서적임을 알게 되었다. 류기일 전 총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극동대학교 출판센터장으로 본서의 신속한 발행을 위해 여러모로 애써주신 조성근 교수님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끝으로 약 반세기 전에 쓰신 소중한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를 우리 말로 번역하여 본서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구순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출판을 위해 필요한 원고를 직접 작성해 주시면서 필자에게 본서의 발간을 통해 위대한 링컨에 관한 공동 저자가 될 수 있는 기회와 영광을 베풀어 주신 김동길 박사님께 그 누구보다 앞서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머리말]

세계화와 더불어 국제사회의 다양한 정보와 문화교류의 필요가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번역은 서로 다른 언어?문화권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정보가 곧 경쟁력인 21세기에 국가경쟁력 제고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문번역사에 대한 수요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으며 번역작업의 전문성에 대하여도 점진적으로 그 인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번역은 더 이상 단순한 언어 전환 작업이 아니라 도착언어권의 문화, 제도, 텍스트성 등과 더불어 번역문의 용도, 목적, 발주자의 의도 및 번역문과 함께 연동되는 테크놀러지 등 다양한 사안을 고려해야 하는 새로운 산업군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번역, 즉 독립적으로 작업하는 전문가 개인에 의존한 번역시스템은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번역자는 원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원문 해독능력과 번역문의 목적에 부합하고 가독성이 높은 번역문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한층 복잡해진 번역 과정을 이해하고 번역에 필요한 컴퓨터 보조번역 프로그램(Computer Aided Translation Tool) 및 이제는 현실로 다가온 신경망 번역(Neural Machine Translation) 결과물의 효율적인 포스트 에디팅(Post Editing) 등 변화하는 번역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 책은 부족하지만 미래의 번역사 여러분이 변화하는 번역 업계의 지각변동에 적응하며 전문번역사로서 갖추어야 할 다양한 능력을 획득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제3장 링컨: 윤리적 대통령]

“의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첫째요,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은 그 다음이라.
덕을 완성하는 것이 먼저요,
다른 모든 것들은 그 무엇이든 부차적인 것이다.”
-예기(禮記)
링컨을 “스스로 만든 신화”(Self-made Myth)라고 부른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비판적이지만, 인간 그리고 지도자로서 링컨의 위대성을 적절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링컨은 보수적 휘그당원들과 반노예제 지지자들을 효과적으로 결집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이에 따라 그의 명성 또한 자자해졌다. 링컨은 노예제도를 미 전역에 확산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가려내어, 공화당 내 와해 움직임을 강력한 통합의 힘으로 전환시켰다. 그는 공화당이 극도로 이질적인 집단들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분열된 집”(House Divided) 연설을 통해 당이 “낯설고, 부조화스러우며, 심지어 적대적인 요소들”로 이뤄져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노예제 폐지론자들과 흑인 혐오자들 외에도, 공화당은 부자와 가난한 자들, 개인과 기업들, 구시대 정치에 신물이 난 전 휘그당원 및 민주당원들, 절주 운동가들과 술꾼들, 문맹자들과 이주민들을 아우르고 있었다. 링컨은 그런 연합을 하나로 이끌고 정권을 쥐고, 전쟁에 승리한 능수능란한 수완을 지닌 자였다.

호프스태터는 그러나 “연합을 지탱해 나가고, 정권을 쥐고, 전쟁에 승리한 능수능란한 수완” 뒤에 숨겨진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링컨의 수완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그의 독특하면서도 뛰어난 도덕적 자질이었다. 동양적 시각에서 보면 이것이야말로 링컨을 다른 유명한 서구의 지도자들과 구별케 하는 것이었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표현을 빌리자면, 링컨은 “부도덕한 사회의 도덕적 인간”이었다. 물론 에이브러햄 링컨과 남북전쟁 시기의 미국 사회가 특별히 부도덕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사회는 그 사회에 속한 도덕적 개인들이 도덕적인 삶을 지속해나가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부도덕적이다. 도덕적 인간이 부도덕한 사회에서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공자와 맹자 모두의 꿈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 가운데 부도덕한 환경 속에서 존재했던 진정한 도덕적 지도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리고 링컨은 확실히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랜달(J.G. Randall)은 도덕적 지도자로서의 링컨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링컨을 평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가 가장 왕성해보일 때 내놓은 성명을 통해서다. 생산자들의 특수한 이익을 위한 보호관세를 설명할 때 그는 다소 더듬거리거나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러나 윌리엄 헨돈(William H. Herndon)이 말한 바와 같이, 근본적 인권에 대한 문제를 다룰 때 링컨은 다른 사람이 된다. 우리는 헨돈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기술을 볼 수 있다. “링컨이 자유를, 독립선언서를 뒷받침하는 권리를 보호할 때면, 그는 마치 도움과 지원을 구하기 위해 절대자에 호소하는 것처럼 혹은 그가 매우 사랑하는 어떤 사람을 감싸안는 것처럼 팔을 뻗었다. 그때야말로 그가 창조주의 손에서 갓 나온 것과 같이 영감을 얻은 듯한 순간이었다. 링컨의 회색 눈동자는 노예제도에 반대할 때나, 정의와 인류의 진보를 포함하는 자유의 희망과 사랑을 언급할 때 불타올랐다.”

맹자가 참된 지도자로 추구했던 것은 바로 링컨이 풍부히 소유하고 있었던 도덕적 자질과 사명감이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4년 간 지속된 끔찍한 내전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안으로 성찰하여 잘못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찌 근심하며 두려워하겠는가?”
1860년 11월 선거 이후 링컨이 취임하기 전, 스프링필드 (Springfield)에서는 우려 섞인, 또 지쳐가는 4개월을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기 링컨은 침묵을 지켰다. 공자는 “쉽게 동요하지 않고, 결연하며, 나무같은, 말하기를 더디하는 자가 선(善)에 가깝다”면서, 마치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사람을 묘사하는 것과 같이 말했다. 링컨은 관직을 탐하는 사람들, 정치인들, 장삼이사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의 “차분함”과 명랑함을 유지했다. “군자는 자부심이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나 자부심이 없다.”
1860년의 선거결과는 남부에서의 분리주의 운동이 공공연하게 전개되면서 제대로 공표될 수 없었다. 링컨이 취임하기 한 달 전 남부 7개주가 연방탈퇴령을 채택하고 독립적인 국가연합을 구성, 해당 연합을 위한 헌법을 작성했다. 또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Davis)를 대통령에 선출함으로써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다른 주들의 신속한 동참을 기대했다.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남부의 많은 곳에서 공공연한 반란이 전개되고 있었고, 나머지 노예소유주들(Slaveholding States) 역시 반란주들의 움직임에 흔들리고 있었다. 반란은 완강하고 대담하며 숙련된 지도자들에 의해 전개됐다. 열정과 군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남부 사람들은 무장을 시작해 이미 몇몇 진지들과 무기고들을 점령한 상태였다. 연방정부에서도 “남부 동조세력”이 없지 않았다. 국고는 비었고, 공적자금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정규군 역시 몇몇 탁월한 사령관들의 이탈로 인해 형편이 좋지 못했다. 해군은 거의 도움이 못되는 수준이었다. 노예 권력(slave power)의 위협 및 분열은 이제 심각한 현실이 됐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의 혼란이 불협화음을 타고 전국을 휩쓸었다. 게다가 미 연방의 영구적 붕괴를 바라는 구(舊)세계의 은밀한 열망 또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정직한 에이브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그는 이 모든 상황들을 통제해야 했다. 링컨은 워싱턴에 많은 친구들을 두지 못했었고, 심지어 공화당 내에서도 링컨의 취임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세력들이 많았다. 특히 스워드(Seward) 세력은 여전히 낭패감에 젖어 있었다. 윤리적 대통령 링컨은 딜레마적 상황에 놓였다. 링컨은 “1년 내에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고, 3년 이내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50년 후,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 손문(孫文)은 청나라 멸망 후 자신이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신생 공화국 수립 후 유감스럽게도 좋지 못한 일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대부분의 개혁적 지도자들은 손문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고 군벌주의의 길을 걸었다. 원세개(袁世凱)와 장훈(張勳) 같은 몇몇 강력한 지도자들은 제국의 부활을 꿈꿨다. 중화민국의 아버지 손문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 무엇을 했는가? 손문은 자신의 당에 환멸을 느꼈다. 환멸의 정도가 너무 극심한 나머지 임시 대총통직을 사임했다. 개척국가 미국의 삼손이었던 링컨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했는가? 그는 환멸을 느끼지도, 대통령직에서 내려오지도 않았다. 대통령직을 붙잡고,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싸웠다. 도덕적 강단에 있어서만큼 링컨은 확실히 “불굴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링컨의 뛰어난 도덕적 자질은 정치지도자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도 빛났다. 링컨의 주요 정치적 연설 및 메시지들은 혼란과 불화, 아수라장 속에서도 최고통수권자가 윤리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그의 첫 번째 취임사는 단순히 링컨 행정부 임기를 통해 취해질 수 있는 공식적 방침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담고 있었다. 칼 슐츠(Carl Schurz)가 지적한대로, “그 취임사는 마치 다루기 힘든 아이들을 앞에 두고 비탄하는 아버지의 간청과도 같았다. 가장 친절한 언어로 그는 분리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분열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리고 분리주의자들 자신을 위해서도 왜 그들이 연방의 분열 추구를 멈춰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불만 가운데 놓인 나의 동포 여러분, 나의 손이 아닌 바로 여러분들의 손에 내전이라는 중대한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을 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자신이 공격자가 되지 않는 한 물리적 충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미합중국의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하며, 지키는” 엄숙한 선서를 할 것이나, 여러분들에게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천부적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적이 아닙니다. 친구입니다. 우리는 적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감정이 격앙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애정의 연대를 깰 수는 없는 것입니다. 기억이라는 신비로운 감정은 모든 전투현장과 애국자의 무덤부터, 이 드넓은 땅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가슴과 가정에 이르기까지 퍼져 있습니다. 확신하건대, 우리 본성 가운데 있는 보다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의 손길이 다시 다가올 때 연방의 찬가 또한 울려퍼질 것입니다.

“우리 본성 가운데 놓인 보다 선한 천사”에 호소한 점에 비춰보면, 링컨은 결코 평범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현대의 마키아벨리적 혹은 맑시즘적 시각에서 보면 링컨은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 철학자인 동시에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었던 맹자가 다른 상황에서도 사실상 링컨과 같은 말을 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본문 중에서